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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 저자마크 월린
  • 출판사심심
  • 출판년2016-11-30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0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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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

    - 윌리엄 포크너,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



    불안감, 우울함, 강박관념, 정체 모를 두려움 같은 정서적 문제를

    단순히 ‘내 문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 최광현 한세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가족의 두 얼굴》 저자



    과학은 어떻게 트라우마가 몸에서 몸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혔나




    정신분석학의 태동기를 이끈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00여 년 전에 ‘반복 강박’이라는 말로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재현하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했다. 카를 융도 무의식 상태로 남은 기억과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운명이나 운으로 삶의 표면에 다시 떠오른다고 믿었다. 프로이트와 융은 둘 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에 저장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기억이 마음에 남기는 상처’, 즉 트라우마가 의식 밑바닥에 깔린 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초기 심리학자의 마치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현대 과학자와 심리학자를 통해 ‘과학’으로 증명되고 있다.

    2015년 8월 21일,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가 대표적 사례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트라우마가 그 자녀에게까지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는 내용이었다. ‘정신적 외상’이 실제 몸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유전자가 기능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다는 이 기사는 과학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충격을 안겨주었다.

    연구를 이끈 레이철 예후다Rachel Yehuda 뉴욕 마운트시나이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녀는 이미 2005년에 9ㆍ11 세계무역센터 테러 생존자 연구로 ‘후성유전학(DNA 염기 서열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발현과 기능 방식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예후다 연구팀은 테러 당시 그 근처에 있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은 임신부가 낳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이 아이들은 감정을 조절하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졌으며, 새로운 자극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 심하게 반응했다. 이 연구 결과는 스트레스 패턴이 임신한 여성에게서 그 자녀에게도 옮겨간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에 충분했다.

    후성유전학뿐 아니라, 정신의학, 신경과학, 세포생물학, 발달심리학 등 최신 과학은 ‘트라우마가 세대에서 세대로, 몸에서 몸으로 대물림된다’는 결정적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유기, 자살, 전쟁, 사랑하는 가족의 때 이른 죽음 등 다양한 유형의 비극이 주는 충격파, 즉 트라우마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원인과 숨은 매커니즘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탐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심심 刊, 원제: It did't start with you)》가 출간됐다.

    이 책은 앞서 살핀 레이철 예후다 연구 사례를 비롯해 미해결 상태로 남은 가족 트라우마가 세대에 걸쳐 대물림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최신 연구 결과를 망라해 샅샅이 다룬다. 또 20년 넘는 임상 경험을 지닌 저자가 꺼내놓는 ‘내밀하고도 감동적인’ 상담 사례는 트라우마를 개인 문제가 아닌 가족 문제이자 사회 문제로 확장해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가족 트라우마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악순환을 끝낼 실질적이고도 유용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낮은 자존감, 망가진 마음, 뒤엉킨 삶…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가족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이런 고통의 대물림이 과연 타당할까? 이 허무맹랑하고 비과학적인 듯 보이는 이야기를, 최신 과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최초에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죽었거나, 그 일이 오랜 세월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고 해도 그 경험과 기억, 신체감각의 파편이 과거로부터 빠져나와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기억과 감정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최신 과학 연구 사례



    1. 세포생물학의 발견. 선구적인 세포생물학자 브루스 립턴Bruce Lipton은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생각과 믿음, 감정이 DNA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평생을 보냈다.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스탠퍼드 대학교 시절에는 환경에서 오는 신호가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 세포의 행동과 생리학을 통제하고 이것이 다시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침묵시킬 수 있음을 밝혀냈다. 즉 환경이 유전자의 기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또 동물 세포와 인간 세포 연구로 자궁 내에서 세포의 기억이 어머니에게서 태아에게로 전달되는 과정도 알아냈다. 임신 기간 중 산모 혈액 속 영양분이 태아에게 옮겨가는데, 그때 영양소와 함께 감정이 생성한 수많은 호르몬과 정보 신호도 방출된다는 것. 엄마가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분노나 두려움을 느끼면, 그 감정이 태아에게 각인되어 ‘사전 프로그램화’한다. 이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심한 자궁 내 환경을 경험한 아이는 그와 유사한 스트레스 상황을 맞닥뜨리면, 과민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55-56쪽)



    2. 후성유전학의 발견. 현대의 후성유전학 연구자들은 ‘부모에게 받은 염색체의 DNA로만 유전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온 기존 과학 상식을 뒤집었다.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색깔 등 신체 특징을 전해주는 염색체의 DNA가 전체 DNA의 2퍼센트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나머지 98퍼센트를 ‘비부호화DNA’라고 부르는데 이는 감정, 행동, 성격 특성을 물려준다. 비부호화DNA는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영향을 받은 DNA가 자궁 밖의 삶에 대비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면 그걸 바탕으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특성을 갖춘다. 레이철 예후다는 이러한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부모가 경험한 트라우마에 대처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즉 유사한 스트레스 요인에 대비할 특정 도구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한편으론 해롭다. 예를 들어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생애 초기에 전쟁 지역에서 살았다면 자녀는 갑작스런 소음이 들릴 때 뒤로 숨으려는 충동을 물려받을 수 있다. 이 본능은 폭격 위협이 있을 때는 보호 기능을 하지만 반대로 아무 위험이 없을 때조차 지나치게 민감한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58-59쪽)



    3. 인간과 유전자 구조가 99퍼센트 일치하는 쥐 실험 결과. 2014년 취리히 대학 뇌 연구소는 수컷 생쥐를 장기간 반복적으로 어미와 떨어뜨려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실험을 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생쥐는 후에 우울증과 유사한 몇 가지 증상을 보였는데, 그 생쥐들의 2대와 3대 자손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동일한 트라우마 증상을 보였다.(69쪽) 같은 해 캐나다 레스브리지 대학교에서 진행한 쥐 실험에서는 임신한 어미가 받은 스트레스가 조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는 조산했고 암컷 새끼들도 후에 임신 기간이 줄었다. 3세대 쥐는 2세대 쥐보다 임신 기간이 더 짧아졌다.(73쪽)





    가족 트라우마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마침내 벗어나는 법

    20년 간 수천 명을 상담, 치료한 가족 트라우마 전문가의 입증된 처방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만성 통증이나 질환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가본 사람. 수년간 상담도 해보고 약도 처방받아 먹어봤지만 호전되는 기색이 없던 그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갈급한 심정으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 책을 쓴 마크 월린 ‘가족 포치 연구소Family Constellation Institution’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심리 증상과 고통을 겪을 때, 문제의 해답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다가 지쳤다면 부모나 조부모 심지어 증조부모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와 더불어, 20년간 진행한 워크숍, 트레이닝, 개인 상담에서 길어 올린 다양한 유형의 사례를 풀어놓는다. 특히 내담자가 사용하는 특별한 ‘언어’에 집중해 트라우마 유전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보통 트라우마 사건을 겪을 때 그 엄청난 충격에 압도되어 우리의 기억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말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 말로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데 트라우마를 겪으며 고장 난 기억 메커니즘이 ‘말문이 막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를 상실한 정도로 압도적인 사건을 경험할 때, 우리는 기억을 이야기 형식으로 정확히 기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그렇더라도 의식 저 너머에 그런 기억의 파편과 조각이 남아 있다가, 특정한 ‘언어’로 떠오르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또 트라우마는 그것을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즉 기억해내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첫 발걸음을 뗀 것이나 다름없다고 얘기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곧,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것이며 언어화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유전된 가족 트라우마에 집중하는 동시에 ‘언어’를 치유의 수단으로 삼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은 트라우마와는 달리 ‘가족에게 물려받은 트라우마’로 인한 ‘언어’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자신이 알거나 경험해온 것과 다른 맥락에 속한 느낌이 든다. 또 자기 내면에서 느껴지는 동시에 외부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말하는 단어인데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강렬한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저자는 ‘트라우마가 유전된다’는 과학적 근거와 ‘트라우마는 언어화하는 것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원리를 버무려 ‘핵심 언어 접근법’을 고안했다. 즉 자신이 특별히 트라우마가 될 만한 상황을 겪지 않았는데도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가족 트라우마의 영향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방법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집중한 것이다. 다음은 이 책에 실린 상담 사례 중 일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상담ㆍ치유 사례



    1. 제시 이야기. 한때 스타 운동선수이자 우등생이었던 제시는 지독한 불면증으로 절망감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대학을 중퇴했다. 한 해 동안 세 명의 의사와 두 명의 심리학자를 만났고 수면 클리닉과 자연요법도 시도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제시는 원래 쉽게 잠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열아홉 살 생일을 보낸 후 새벽 3시 30분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몸이 얼어붙을 듯 추위가 느껴져 덜덜 떨었지만, 담요를 꺼내 덮어도 추위는 가라앉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점이었다. 잠들면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공포였다. 잠들려 할 때마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가 제시를 화들짝 깨웠다. 공포를 동반한 불면증은 1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 감정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어쩌지 못했다. 유별난 점은 처음 불면증이 찾아올 때 ‘얼어붙을 것 같은’ 극도의 추위를 느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제시에겐 열아홉 살 무렵 캐나다에서 송전선을 점검하던 중 동사한 죽은 ‘삼촌’이 있었다. 그 죽음은 가족에게 너무 비극적인 일이라 누구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제시가 죽은 삼촌의 죽음에 얽힌 양상을 재현했던 것이다.(43-44쪽)



    2. 샌디 이야기. 샌디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도, 승강기도 타지 못했다. 승강기 문이 닫히려 할 때나 비행기에 사람이 가득할 때, “나와 출구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릴” 때마다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또 그녀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어 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음을 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샌디 아버지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그녀의 조부모와 고모가 아우슈비츠에서 질식사했다. 그녀는 조부모와 고모의 극심한 공포를 내면에 품은 동시에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의 죄책감까지 끌어안고 있었다.(151-152쪽)



    3. 메건 이야기. 열아홉 살에 딘과 결혼한 메건은 둘 사이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 무렵 어느 날 식탁에 마주 앉은 딘을 바라보던 메건은 망연자실했다. 딘을 사랑하는 감정이 갑자기 싹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몇 주 뒤 메건은 이혼 소송을 냈지만 느닷없이 사랑이 식어버린 것이 정도를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가족사가 진실을 말해줬다. 메건의 외할머니가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바다낚시 중 익사한 것이다. 외할머니는 재혼하지 않고 메건의 어머니를 홀로 키웠다.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들 가족에게 일어난 거대한 비극이었다. 너무도 잘 아는 일이기에 메건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외할머니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외로움과 깊은 상실감, 망연자실함을 재현해왔음을 깨달은 메건은 눈을 깜빡이며 얼굴을 찌푸렸다. 얼마 후 메건은 얕은 숨을 연이어 뱉어냈다. 몇 분 더 지나자 메건의 호흡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각을 맞추던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희망적인 느낌이 들어요. 딘에게 말해야겠어요.”(131-132쪽)



    4. 프락 이야기. 여덟 살 캄보디아계 미국인 소년 프락은 캄보디아의 캄푸치아 공산당 조직인 크메르루주에게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존재를 몰랐다. 프락의 할아버지는 커다란 낫에 맞아 죽었다. 프락의 부모는 ‘킬링필드’ 생존자 1세대였다. 프락은 자꾸만 벽이나 쇠기둥에 머리를 박아 부상을 입었고, 매일 옷걸이로 바닥이나 소파를 후려치면서 “죽여라! 죽여라!” 하고 소리치며 “놀았”다. 프락은 옷걸이로 후려치는 동작으로 살해자가 할아버지에게 가한 치명적 타격을 소름끼치게 재현하는 동시에 자기 머리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할아버지의 부상을 재현했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은 가족은 그 일을 묻어두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모는 자식이 불필요한 고통에 노출되지 않는 편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입을 다문다. 그러나 프락의 사례를 볼 때 과거를 묻어둔다고 해서 다음 세대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프락은 부모에게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침대 머리맡에 할아버지 사진을 두고 할아버지와 그 세대 가해자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기린 지 3주 후, 프락이 엄마에게 옷걸이를 건네며 말했다. “이제는 이거 갖고 놀지 않을래요.”(189-190쪽)





    개인을 넘어 사회가 트라우마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이 책의 메시지는 이런 의문을 남긴다.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에는 벅찬, ‘가족’이라는 구조 속에서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그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라는 맥락 안에서 우리가 입는 수많은 상처와 고통의 기억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 책은 주로 서구 또는 제3세계의 ‘사회적 재앙’이 어떻게 트라우마로 연결되는지 그 사례를 다뤘다. 이 사례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트라우마 가족 치료 전문가이자 《가족의 두 얼굴》저자로, 이 책을 먼저 읽은 최광현 한세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는 추천의 말에서 이렇게 꼬집는다.



    “전쟁에 참가했거나 홀로코스트 같은 충격을 겪었거나 천재지변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가 생긴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재앙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멀게는 일제강점기 시절을 치욕 속에서 견뎌야 했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불행에 휘말리기도 했다. 크고 작은 사건이나 사고도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 사회적 재앙, 불가항력적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은 가족의 역사를 타고 내려오는 암울한 기억, 고통스런 사건이 우리에게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을 다룬다. 또 그 순환의 고리, 즉 내가 그것을 끊어내지 않으면 결국 내 후대의 정신 건강과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 끔찍하고도 다행스런 ‘각성’은 우리로 하여금 가족과 관계 맺는 법을 재정비하도록 이끈다. 부모 세대 또는 그 윗세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든 그리고그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이후 삶이 달라질 수 있고, 내 아이의 인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그 명징한 사실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책에는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가족 이야기가 등장한다. 폐소공포증을 느끼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 운디드 니 대학살 지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의 높은 자살률, 세계무역센터 테러 생존자 자녀들이 겪는 우울증, 캄보디아 킬링필드 생존자의 후손이 보이는 폭력성.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주변 환경과 사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누구도 사회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쟁과 그로 인한 무수한 악영향, 인종차별주의와 그로 인한 무수한 악영향, 대형 참사와 그로 인한 무수한 악영향. 이것들은 우리의 눈과 귀와 뇌로 파고들어 유전자가 기능하는 방식을 바꾸고 감정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최광현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나라는 결코 사회적 재앙에서 안전한 곳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처럼 먼 사례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시점에, 어쩌면 어제, 그리고 지금도 사회적 재앙에 놓여 ‘국민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실린 그 수많은 과학적 뒷받침이 참혹하면서도 한편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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