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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그림자로부터의 탈출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 저자야누쉬 자이델
  • 출판사아작
  • 출판년2019-04-15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7-16)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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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미 SF의 판도를 뒤엎을 폴란드 디스토피아 소설!

    폴란드 SF 팬들이 스타니스와프 렘보다 더 사랑하는 작가,

    계엄령이 해제된 후에야 간신히 출간된 사회적 SF 역작!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을 처음 읽으면서, 그리고 번역하면서 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화해치유재단의 설립과, 매국적인 위안부 합의와, 그 모든 ‘역사 수정’의 시도들을 생각했다. ‘프록스’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달걀을 숨어서 먹고 시가를 숨어서 피우는 작품 속의 지구인들과, 노란 리본을 달면 경복궁 안으로, 청운동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던 현실의 경찰을 생각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지만, 꼭 지나간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개미 SF의 판도를 뒤엎을 폴란드 디스토피아 소설!

    폴란드 SF 팬들이 스타니스와프 렘보다 더 사랑하는 작가,

    계엄령이 해제된 후에야 간신히 출간된 사회적 SF 역작!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외계인의 공습. 그 침공을 막아주겠다며 또 다른 착한 외계인이 나타나 인류를 구원한다. 그런데 그 후 그 우호적인 외계인들은 수십 년간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채, 달걀 모양의 비행체를 타고 다니며 인류를 지배한다. 지구의 모든 국가를 없애는 대신 구역을 정사각형으로 분할하고, 인류의 과학 발전에 대한 연구는 가로막은 채 농산물 재배에만 힘쓰게 한다. 이제 인류는 외계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전쟁에 대한 걱정도, 다른 외계인들의 침략에 대한 걱정도 없이 마치 꿀벌처럼 안전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이제 인류에게는 유토피아가 온 것일까.



    《솔라리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폴란드 SF 작가는 스타니스와프 렘. 하지만 정작 폴란드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SF 작가는 따로 있으니, 바로 “폴란드 사회적 SF의 아버지”로 불리는 야누쉬 자이델이다. 이 작품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계엄령 직후 출간되자마자 1984년 폴란드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 ‘황금 세풀카 상’을 수상했는데, 1985년 작가 사후에는 그 상 이름마저 작가의 이름을 기려 ‘야누쉬 자이델 상’으로 바뀔 정도. 그리고 지금까지 폴란드의 SF 작가들에게 야누쉬 자이델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일부 동유럽 국가에만 알려졌을 뿐, 전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사회적 SF의 거장 야누쉬 자이델의 대표작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작품이 집필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일본 식민지와 군사 독재 정권, 가까이는 박근혜의 탈을 쓴 최순실 정부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폴란드 국민들의 이야기는 아주 낯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달걀 껍데기 속에 숨은 외계인의 실체를 늦었지만, 확인해본다.



    옛 동구권의 SF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구소련을 포함한다면 그 위력은 더욱 막강해지죠. 이쪽의 작품들은 비슷한 시기에 황금기를 보냈던 영미권의 SF와는 사뭇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이 지역에서 유구히 내려오는 환상문학의 전통일 겁니다. 한국에도 종종 소개가 되었죠. 브루노 슐츠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애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얀 포토츠키가 선사했던 우화와 악몽 사이의 환상들은 정말 아름답고도 기이한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쪽 분들은 영화도 이런 걸 잘 만들었죠. 그로테스크 영상의 대가인 얀 츠반크마이어가 떠오르네요. 그래서일까요, 판타지와 SF의 경계는 동구권에서는 대단히, 자연스럽게 흐릿합니다. 카렐 차페크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둘 다 너무 잘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렘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둘 다 잘했고, 동구권 작품 특유의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세계만방에 알렸죠. 소련을 포함하면 미하일 불가코프도 있습니다. 예프게니 자먀친도 있고 스트루가츠키 형제도 있고… 끝이 없네요. 모두 꿈과 환상과 '과학소설'을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넣고 자유자재로 재조합하는 능력을 가진 작가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들 지역에서 SF는 유구한 환상 문학의 전통을 이을 적자였던 셈이죠. 그래서 많이들 썼고, 또 많이들 읽었다고 합니다. 동유럽에서 SF는 자연스럽게 사랑받는 장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그곳의 작품들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월드 클래스의 걸작들과 견줄 만한 작품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동유럽의 유구한 환상적이고 독특한 감수성이 잘 안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예 소개가 안 된 건 아니었죠. 체코 작가인 마르틴 하르니체크의 《고기》 같은 작품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소비에트 사회를 배급제 인육 시장으로 빗댄 설정이 작품 전체를 꽉 쥐고 끌고 갔죠.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도 다른 나라의 디스토피아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안겨 줬습니다. 실제로 배급제가 실시되던 통제 사회를 겪어본 작가에게 디스토피아는 현실의 다른 면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이것이 동유럽 SF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디스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 SF를 썼다는 것. 차마 '쓸 수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네요. 마침 거기 살았기에 디스토피아 SF를 더 잘 쓸 수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겁니다.



    여기, 폴란드에서 온 새로운 디스토피아 SF가 있습니다. 폴란드에서 유명한 작가 야누쉬 자이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입니다.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막막한 탈출 시도를 다룬 도입부를 보면 딱 견적이 나올 것 같습니다. 체코 SF 단편집인 《제대로 된 시체답게 행동해!》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죠. 약간 모던한 설정이 있는 디스토피아 SF로, 암울하고 무거운 작품이 될 듯합니다. 기분이 답답한 날에는 읽기 힘들 듯한 작품들이요.



    그런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꽤 평범한 동네에서 그럭저럭 평범해 보이는 청소년이 작은 일탈을 합니다. 소년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통제구역, 즉 자기 거주지의 경계 근처로 버스를 타고 갑니다. 이거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인가? 하지만 곧 앞선 1장과 이 2장은 설정을 공유하면서 세계를 그려나갑니다. 소년은 자기 구역에서 탈출하려다 잡힌 ‘죄수’를 발견합니다. 그렇군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주어진 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이 세계관은 천천히 확장됩니다. 전 세계적인 통신 네트워크는 단절되었고, 사람들은 시 정도의 크기로 나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사회 체계는 우리를 악당 외계인으로부터 구해 준 선한 외계인들이 제안해준 것이니까요. 그 선한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치안을 담당하며 인간들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착하다는 외계인들이 사실은 나쁜 의도를 가진 게 아닐까요. 누구나 가질 법한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작품이 먼저 선수를 칩니다. 초반부터 뭔가 이상합니다. 소년들은 우연히 과학실에서 발견한 생물 도감에서 ‘개미’라는 항목을 발견하는데, 그런 곤충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물 교사는 아이들이 개미가 뭐냐고 묻자 벌벌 떨면서 그건 오류일 거라고, 잘못된 정보라고 말하죠. 며칠 뒤 교사는 학교에서 ‘사라집니다.’ 소년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채게 되죠.



    이후로 이 소설은 마치 《별의 계승자》처럼 진행됩니다.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외계인들의 정체와 그 의도를 알아내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펼쳐집니다. 이 부분이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에서 가장 매력적입니다. 특히 외계인들이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선택한 무기의 정체가 기막힙니다. 무척 자연스러운, 있을 법한 무기이고, 실제로도 효과가 있을 거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기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동구권의 어두운 역사 혹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정신적 한계를 그려낸 알레고리처럼 작동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상 이 소설의 핵심이며, 플롯의 전개는 이 아이디어를 펼쳐낼 적당한 타이밍을 제공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플롯의 전개는 단순합니다. 좀 더 복잡한, 좀 더 본격 소설에 가까운 인물과 전개를 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과 연결된 강력한 알레고리를 지닌 작품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더 많은 독자에게 이 알레고리의 의미를 쉽고 확실하게 알릴 것인가, 아니면 일종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알레고리를 하나의 미적 요소로 활용할 것인가를 말이죠(물론 드물게 둘 다에 해당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그건 예외로 하겠습니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폴란드 사회적 환상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야누쉬 자이델은 일종의 폴란드판 ‘영 어덜트’ 소설을 쓴 것입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 명백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죠.



    그렇다면 너무 시시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닥터 후〉에 나오는 달렉을 닮은 외계 로봇의 정체에 대한 가설을 내놓고 오류의 폭을 좁혀가는 ‘지성인’들의 활약은 재미있습니다. 추론을 뒷받침할 데이터를 얻기 위해 온갖 재기발랄한 방법들을 동원하는 모습들도 그렇고요. 데이터를 둘러싼 공방이 펼쳐집니다. 외계인은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흘리지 않으려 하고, 저항하려는 인간들은 어떻게든 뽑아내려고 합니다. 갑옷인지 우주복인지 무인 로봇인지도 모르는 저 로봇의 무게를 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피의 경도는 어느 정도일까? 동력원은 무엇이고, 착탈은 어떻게 하고 배설물 처리는 어떻게 하나? 그리고 이 모든 추측은 흥미로운 결론을 제공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배와 피지배에 관한 심리 게임은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아주 멋진 설정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맹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까지 읽은 보람을 안겨주는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동구권의 SF와 환상문학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드릴 겁니다.



    이 독특한 매력을 지닌 세계를, 지금 바로 (다시) 만나 보시기를 권합니다.





    작품 해설



    개미 SF의 판도를 뒤엎을 폴란드 디스토피아가 왔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폴란드 사회적 SF의 거장 야누쉬 자이델(Janusz Andrzej Zajdel, 1938~1985)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1. 작가에 대하여



    야누쉬 자이델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평생 바르샤바에서 살았다. 자이델은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중앙 방사능 연구소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작가로 데뷔한 것은 1961년이었는데 초기 자이델 작품은 핵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SF답게 학문적 지식을 토대로 과학의 발전, 외계 문명과의 접촉, 우주 탐사 등을 이야기하는 이른바 ‘하드 SF’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1980년 《반 트로프 실린더(Cylinder van Troffa)》에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면서 자이델은 사회적 SF 혹은 디스토피아 SF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작품은 출간된 해에 폴란드 문화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8년에 집필되어 1983년에 출간된 본작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또한 이러한 디스토피아 SF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출간된 이듬해인 1984년 폴란드 SF 팬덤에서 수여하는 ‘황금 세풀카 상’(Złota Sepulka)을 수상했는데, ‘세풀카’는 폴란드 국내외에 잘 알려진 걸출한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ław Lem, 1921~2006)의 작품에 나오는 외계 종족의 이름이다. 황금 세풀카 상은 이후 1985년을 끝으로 사라졌지만, 1984년에 별도로 새롭게 제정된 폴란드 SF 팬덤이 수여하는 SF 문학상 이름은 자이델의 이름을 따 ‘야누쉬 A. 자이델 상’으로 명명되었다. 야누쉬 자이델 상, 혹은 줄여서 자이델 상은 현재까지도 폴란드 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권위 있는 SF 문학상이다. 폴란드 SF 팬덤에서 수여하는 SF 문학상의 이름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이름이 아니라 야누쉬 자이델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야누쉬 자이델은 1985년 유작 《크시 행성에 대한 두 번째 시선(Drugie spojrzenie na planet? Ksi)》을 집필하던 중 폐암으로 사망했다. 자이델은 단편 83편과 장편 8편, 그리고 핵물리학자로서 연구서 5권을 남겼다. 자이델의 SF 작품들은 폴란드 인근의 동유럽 국가들 및 독일에서는 일부 번역되어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이델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로 남아있다. 반면에 폴란드 국내에서 자이델은 오늘날까지 큰 규모의 팬덤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의 SF 작품들은 이후 폴란드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2015년 폴란드 라디오 역사방송은 야누쉬 자이델에 대한 특집을 방송하면서 자이델이야말로 ‘폴란드 사회적 환상소설의 아버지’라 단언했다.





    2. 작품에 대하여: 소비에트의 그림자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는 폴란드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도움이 된다. 소설의 거의 전체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산 폴란드 지배에 대한 은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39년 8월 23일 당시 히틀러가 지배하던 나치 독일과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협상 현장에 실제로 참여했던 대표자들의 이름을 따서 이 조약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Molotov-Ribbentrop Pact) 혹은 나치-소련 불가침 조약 혹은 히틀러-스탈린 조약이라고 한다. 9일 뒤인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후의 전개는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의 승리와 히틀러의 자살.

    하지만 폴란드 역사는 승리로 끝나지 못했다. 나치 독일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을 어기고 1941년 소련을 침공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은 응전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소련군은 연합군과 함께 나치를 패퇴시켰다. 그리고 폴란드는 소련군에 점령되어 공산화되었다.

    이미 폴란드는 1792년~1795년 사이에 3차례에 걸쳐 최종적으로 프러시아(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러시아 제국에 분할 점령당해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수모를 겪었었다. 이후 120년간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수많은 폴란드인이 피를 흘린 끝에 1918년 공산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면서 폴란드가 마침내 쟁취한 자유와 독립은 1939년 나치의 침공, 1944년 소련군의 점령과 함께 다시 사라졌다. 폴란드 역사에서는 1918년 독립 이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까지 20년의 자유와 평화의 기간을 전쟁 사이의 기간이라는 뜻으로 전간기(戰間期, The Inter-War Period, Okres mi?dzywojenny)라고 한다. 자이델은 1938년생이니 이 전간기의 끝자락에 태어난 셈이다.

    공산화 이후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였다. 소련은 이미 공산혁명 직후인 1919년에 당시 막 독립한 신생국가였던 폴란드를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하기 위해 침략한 바 있었다. 이것이 폴-소 전쟁(1919~1921)인데, 소련의 패배로 끝나서인지 러시아 사람들은 잘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약 25년이 지나 폴란드를 마침내 또다시 지배하게 된 소련은 학교에서 제1외국어로 러시아어를 배우도록 강요하고 폴란드인 대부분이 원치 않았던 소비에트 공산주의식 체제와 생활방식을 사회 전반에 주입했다. 폴란드 정부와 여당인 ‘폴란드 단일 노동자당’은 스탈린과 소련의 꼭두각시였으며 경제적으로도 폴란드는 소련에 철저히 종속되었다.

    폴란드 시민들은 각계각층에서 모두 이러한 상황에 반발했으며 그리하여 폴란드에서는 또다시 자유와 독립을 향한 저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에도 알려진 그 유명한 레흐 바웬사(Lech Wał?sa)의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 운동 이전에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와 독립된 폴란드를 위한 수많은 저항 운동들이 있었다. 1968년 봄의 저항운동이 그러했고, 1976년 국회가 폴란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을 때에도 지식인과 노동자 모두 저항과 파업으로 맞섰다. 1976년 폴란드 국회는 폴란드 단일 노동자당에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소비에트 연방과 동맹을 맺는 것을 폴란드 공화국의 헌법적 기본 규범으로 삼는다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지식인들이 성명서를 내걸자 폴란드 정부는 그보다 1년 전에 제정된 유럽안전협조법령에 따라 헌법 개정에 반대 성명을 낸 이른바 ‘59인 명단’의 지식인들을 체포했다. 이것이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이 집필되기 2년 전의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에 등장하는 ‘프록스’ 외계인들이 소비에트의 은유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구를 처음에 침공한 ‘엘고마이’ 외계인들은 나치 독일의 은유일 것이며, 이들의 ‘침공’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에 역사적사건으로 묘사되는 ‘침공’ 이후 프록스 외계인들이 지배하는 지구의 모습은 세세한 면면까지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던 공산 폴란드, 이른바 폴란드 인민 공화국(Polska Rzeczpospolita Ludowa, 1952~1989)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이미 3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사라져버린 과거 어느 시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의 기록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3. 역사 수정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새로 개정될 국정 역사교과서는 조선왕조 5백 년을 다 합친 분량보다 박정희 집권기 17년에 할애된 분량이 더 많았다. 대한민국이 독립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한국인들이 국내외에서 피와 땀으로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여 일본을 패배시켰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었다. 박정희 시대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 운동에 대한 내용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부는 교육계 종사자들에게 새 국정 교과서 견본을 열람할 수 있는 링크를 발송했으며 나는 그래서 이 교과서 견본을 열람했다.

    중등교육 현장의 역사 선생님들과 한국사 전공 교수님들 모두 입을 모아 반대하는 그 국정 역사 교과서를 직접 보고도 나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점이 정말로 무서웠다. 분량상 조선 5백 년 역사보다 박정희 17년이 더 긴 건 좀 이상해 보였지만 그 외에는 “내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내용하고 큰 차이 없어 보였다.” 나도 (박정희 시대는 아니었지만) 국정 교과서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사는 그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에 알게 모르게 길고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국가의 역사는 그 국가의 삶이고, 개인의 삶은 국가의 삶 안에서 이루어진다.

    폴란드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수업 중에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다. 그때 폴란드인 선생님은

    “나치가 쳐들어왔을 때 폴란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어서 1차 세계대전 때 썼던 장검을 들고 탱크에 맞섰다”며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어리석음을 자조했다. 이후 폴란드에서 지냈던 짧은 기간 동안 나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러한 속설이 폴란드 사회에 매우 널리 퍼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장검을 들고 탱크에 맞선” 무분별함을 자조하며 냉소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용기를 찬양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폴란드는 120년간의 식민지배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어와 문화를 모두 말살하려는 한 세기가 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1918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자 곧바로 국가 체계를 갖추었고 1919년 소련이 침공하자 2년간 싸워서 끝내 물리쳤다. 그 후 20년간 자유와 독립을 되찾은 나라에서 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군사 부문도 더욱 정비하고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소련군을 물리쳤던 그 경험과 전략과 무기들이 나치 독일이 쳐들어왔다고 순식간에 사라졌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을 번역하면서, “그때 로켓을 궤도에 전달하기만 했더라면, 끝까지 싸워볼 기회가 있었더라면!”이라고 그렉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 작가가 전하는 탄식을 들으며 나도 또한 폴란드 역사를 잘못 배우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폴란드인들이 스스로 냉소했던,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장검을 들고 탱크에 맞선” 조상들의 무분별함과 준비 없음, 물리적인 약함이 실제 당시 상황과는 전혀 다른 그냥 역사 왜곡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폴란드인 스스로 나약하고 무분별하고 준비성 없는 민족, 그래서 당연한 결과로 식민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는 민족이라 믿도록 세뇌한, 소련의 지배가 남긴 그림자는 아니었을까.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을 처음 읽으면서, 그리고 번역하면서 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화해치유재단의 설립과, 매국적인 위안부 합의와, 그 모든 ‘역사 수정’의 시도들을 생각했다. ‘프록스’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달걀을 숨어서 먹고 시가를 숨어서 피우는 작품 속의 지구인들과, 노란 리본을 달면 경복궁 안으로, 청운동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던 현실의 경찰을 생각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지만, 꼭 지나간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나는 (지구에서는 프록스인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엡시’ 외계인들이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1978년 공산 폴란드에서 집필되었고 집필 후 5년이 지나서야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폴란드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1980년 민주화와 자유화를 향한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이 폴란드 전역으로 번지자 1981년 12월 ‘민족구원군사위원회’에서 헌법에 위배되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은 1983년 여름까지 지속되었고 이 기간 동안 솔리다르노시치 운동과 관련된 인물들 1만여 명이 체포당했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은 계엄령이 해제된 1983년에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출간 자체가 일종의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이었던 셈이다. 지배자, 착취자들이 사실은 일부의 질 나쁜 사기꾼일 뿐이고, 그들을 파견한 고향의 본래 종족 대부분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묘사한 작품의 결말은 소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작가의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4. 역사 보완



    자이델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의 소련 해체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마 살아서 그런 역사의 변화를 목격했다면 자이델은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한국은 2016년의 촛불집회와 2017년의 탄핵을 거쳐 정권을 바꾸고 이제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백 주년의 해를 맞이했다. 일어난 역사는, 좋건 나쁘건, 국가의 앞날과 개인의 삶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는 어떠한 그림자 속에서 살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그림자에서 벗어나야만 하는가.

    그것을 분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 팀처럼, 우리는 이 그림자 안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다. 사회와 국가와 역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의문을 던지고 진실을 찾으려 애쓸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어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져야 함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저 평온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혹은 의문을 던질 필요가 없는 부분에 대해 굳이 의문을 던지고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알아내겠다고 애쓸지도 모른다.

    국가와 역사 전체를 일별하기에 개인은 너무 작고 개인이 볼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작품의 결말에서 스타브착도 그렇기 때문에 프록스인들이 떠난 이유를 “우리는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개인은 그저, 명백한 불의를 목격했을 때에 용기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품 속의 소년 막스처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남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모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삶은 지속되고 개개인의 기억이 쌓여서 역사가 된다.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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