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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저자배윤민정
  • 출판사푸른숲
  • 출판년2019-07-23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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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대와 내가 수평적인 관계로 만날 수 있는 호칭은 없는 걸까?



    “‘그깟 호칭’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그저 호칭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향한다.”



    가족 호칭 내에 깔린 가부장 중심의 위계와 권력,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문제제기를

    서사로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



    다수가 말하는 ‘호칭’은 ‘호칭’일 뿐이라는 공허한 주장과 다르게, ‘호칭’ 안에는 오래된 사회적 관습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호칭’에 담긴 내력이나 유래, 그 ‘호칭’이 발휘하는 효과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어떠한 관계 안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호칭이 매뉴얼처럼 정해져 있을 경우 고유명사 대신 습관적으로 호칭을 부를 뿐이다. 가족이 변화하는 속도와 달리 박제되어 있는 가족 호칭이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호칭은 그저 호칭일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다수가 말하는 ‘변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가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바꿀 것’과 ‘바꾸지 않을 것’을 그토록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는 선언은 습관과 변화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세상에 낱낱이 들어내 보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절한 호칭을 찾는 여행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적절한 호칭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언젠가는 함께 그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 노명우 사회학자,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한국어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의 출판에 대한 내 감정은 ‘반가움’과 ‘고마움’, 그리고 ‘놀라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 단순하지 않은 언어의 문제를 저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가 있다. 아주 일상적인 삶에서 벌어지는 언어의 문제를 통해, 우리에게 언어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저자는 호칭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마주하며 정확히 호칭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깊이 따져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으로 거슬러올라가 그 근원을 깨닫는다. 수많은 숙고 끝에 불편함의 목소리를 내는 상대에게 무지와 무비판적 태도로 기존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관련 지식을 갖추고,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본 후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판단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 아닐까.



    -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언어의 줄다리기》저자



    호칭에 대한 문제제기는 내가 불리고 싶은 호칭을 말하는 것을 뛰어 넘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넓히고 사회에 더 많은 고민을 던진다. ‘나도 같은 가족 구성원으로 대우받고 싶다’는 당연한 주장이 이 책의 시작점이다. 유치하게 호칭 가지고 그러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호칭은 사회적인 위치에 대한 상징이라고. 아무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타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통해 알게 된다. 가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랫사람이 되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면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사회를 비추는 작은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의 저자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싸움은 피곤하고 쉽지 않다. 평온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저자는 너만 조용히 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건방지게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 다른 나를 찾아내고 나와 나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만들어간다. 내가 조용히 해도 문제는 지속될 거라는 믿음이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참고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 책을 보고 싸움을 시작하는 더 많은 사람이 생겨나길 바란다. 존중받기 위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은하선《이기적 섹스》저자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페미니스트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쩌면 내 주변과 일상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가까이 있는 문제를 일단 외면하거나 건너뛴 채, 먼 곳을 향해서만 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삶에 뿌리내린 모순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형님, 동서, 제수씨’ 같은 호칭 사이에서 아주 오래된 차별을 깨달은 저자는 시 가족들에게 ‘호칭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자신이 ‘윗사람’이라 믿는 남자가 ‘아랫사람’으로 여겨온 여성에게 “일상에서 시시콜콜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며 문제를 뭉개고 미성숙하게 대처하는 광경, 문화와 진보를 말하던 사람들이 가족 내 위계질서만은 금과옥조인 양 지키려는 모습 등은 생생한 블랙 코미디처럼 쓴웃음을 짓게 한다. 여성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사소한 정의’를 찾기 위한 길고도 외로운 싸움을 통해 저자는 가부장제의 자연스럽고 평온한 질서가 실은 얼마나 편협하고 우습고 하찮은 것인지 낱낱이 까발린다. 그리고 자신이 안고 있던 모순 또한 직시한다.



    “나는 결혼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될 것을 생각했다. 양가에서 분배되는 재산,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주거 혜택, ‘가족’을 이루었다는 안정감. (중략) 나만큼은 결혼한 여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허들을 모조리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본문 23쪽)



    바다를 떠다니는 한 장의 널빤지에서 작은 뗏목의 일원이 된 것 같다는 안도감을 얻으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걸어 들어가던 순간의 자신을, 저자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돌아본다. 이러한 솔직함과 더불어 그가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집요함이다. 가부장제가 지닌 거대한 기만에 눈감은 결과 ‘그깟 호칭’ 문제로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 그는 불의를 참지 않고 참을성 있게 전진한다. 물론 이 책에 ‘고부 갈등 완전 해결’이나 ‘형님-동서 기싸움’ 같은 막장 드라마 식 ‘사이다 썰’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전’과 ‘언중’ 사이 지워진 여성들의 존재와 언어를 탐구하는 그의 싸움은 “기존의 가부장적 호칭 문화를 해체하려면 또다시 가부장의 권력이 필요한 걸까?”, “왜 대등한 개인이 가족관계로 만났을 때는 권력자와 피권력자로 나누어지는 걸까?”처럼 끝없이 던져지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여성, 자신의 상처에서 눈 돌리지 않는 여성, 자신이 분노를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뜨겁게 담겨 있다. 그의 이야기가 나에게 그러했듯 다른 누군가에게도 용기가 될 거라 믿는다.



    - 최지은《괜찮지 않습니다》저자



    가족 구성원이 ‘아래’와 ‘위’로 나누어져 있다는 믿음,

    호칭을 바꾸면 가족의 위계가 무너질 거라는 허상.

    우리는 과연 평등한 개인으로 만나고 있을까?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는 2018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가족 호칭을 바꾸려고 싸워온 저자의 자전적 기록이다. 시가에서 ‘아주버님’, ‘도련님’, ‘형님’ 등의 호칭을 바꿔보려 말을 꺼내자마자 저자는 곧바로 ‘가족 서열’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서로를 행복하게 부를 수 있도록 평등한 가족 호칭을 찾아보자는 제안은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를 통해 저자는 가족 서열과 나이 서열이 가부장제와 긴밀하게 뒤엉켜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 호칭 투쟁기를 한국여성민우회 독서 모임 회원과 공유하면서 응원을 얻고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생각을 지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더는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에 가족이라는 담장 밖으로 나가 가족 호칭이라는 계단을 부수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남편 형으로부터 들은 모욕적인 폭언 중 가장 가슴 아팠던 두 문장을 100개의 컵에 새기고, 컵 아래쪽에는 ‘Men Talk’라는 글자를 새긴 뒤, 그간의 호칭 투쟁 기록을 편지로 써서 100개의 컵 박스 안에 담고 광장으로 나섰다.



    “2018년 3월. 광화문에서 '세계여성의날' 기념 대회가 열렸다. 전날 밤 나는 옷장을 뒤져서 결혼식 피로연 때 입었던 하얀 드레스를 찾았다. (…)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 언어 예절〉 가족 관계 호칭을 개정하라. (…) 지금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미투 운동인데, 내가 다른 이야기를 얘기해도 괜찮을까? '화력 '을 분산시키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너무 나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171쪽) 가족 호칭은 지금 말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주제가 아닐까…. 성폭력이 아닌 다른 주제로 1인 시위를 계획하자니 신경이 쓰였다. 더 중요한 일을 해결해야 할 에너지가 흩어질까 봐. 혹은 이런 호칭 이야기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봐.”(171쪽)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공감했다. 저자는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자신 안에 머물던 한 가지 생각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 누구도 듣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 이후 저자는 자신의 호칭 개선 투쟁기를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에 4회에 걸쳐 연재하는데, 이 글이 오마이뉴스에 노출되면서 수많은 이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된다. 댓글 창에는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가족 호칭 개선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들끓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 호칭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을 자신이 속한 가족 집단을 해체시키고 파괴하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이 책은 한국여성민우회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더욱 자세한 가족 호칭 투쟁의 기록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사의 속도감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촘촘하고 세밀한 묘사는 스토리의 흡입력을 한층 강화시킨다. 이 책은 여전히 우리 내면에 깊게 박힌 가부장의 질서를 언어라는 차원에서 숙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한국의 가족 호칭이 차별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나

    많은 사람이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국 사회의

    뇌관 하나를 밟아버린 것 같았다.”(192쪽)



    ■ 이야기의 시작

    자신을 바다에 떠다니는 한 장의 널빤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민정. 파도가 치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리는 외롭고 무력한 존재라 스스로를 여기던 민정이 결혼을 했다. 삶의 풍파를 함께 감당할 사람을 찾았다는 안도감, 내 삶을 나눌 이를 찾았다는 기쁨에 부풀어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어떠한 폭력도 서슴없이 행했던 민정의 아버지. 아버지의 독재가 드리운 자신의 성장배경과 달리, 진보적이고 평등한 대화가 가능하리라 보인 두현의 부모님을 만나며 민정은 자신도 그들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어렴풋한 희망을 품는다. 결혼한 여자들이 으레 겪는 명절이며 제사, 출산 등의 허들은 거뜬히 넘으리라 자신만만하게 여기면서. 그렇게 민정은 두현의 식구들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인다. 민정은 그 울타리에 속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속에 각자의 계단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계단의 가장 아래층에는 민정의 자리가 있었다.



    민정은 결혼을 하고 나서야 시가 집단 안에서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의견을 말하는 행위가 언제나 ‘위에서 아래’라는 방향으로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민정의 제안이 타당하건 그렇지 않건 결국 형님인 수진(형의 부인)에게 사과하게 되는 것. 이것이 한국 가족 안에서 작동하는 서열이라는 구조의 힘이다. 호칭을 바꾸자는 제안에 재현(형)과 수진이 이토록 격분한 이유는, 이 호칭이 가족 안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구분된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위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그 인식은 곧 가족의 서열 구조를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서로에 대한 괘씸함과 모멸감으로 무장한 채 마주하게 되는 이 계단. 자신은 자신의 계단에 서 있었을 뿐이라는 억울함. 이 계단에서는 누구도 평등한 개인으로 만날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한 호칭을 찾아보자는 제안마저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도발이자 도전으로 여겨지는 기이한 관계를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한 해가 시작되던 무렵 그 말을 꺼냈을 때, 시가 구성원들이 놀라고, 분노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배우자의 형과 그의 아내, 나아가 그 아내의 부모님까지 충격을 받고 근심에 휩싸일 거라고는, 그리고 그중 몇몇은 눈물까지 흘리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 사람들을 분노와 상심으로 몰아넣은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를 했기에, 그들은 입을 모아 사과하기를 요구했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은 나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11쪽)

    ■ 시대착오적인 가족 호칭

    결혼을 한 다수의 여자들이 겪는 고충 중 하나는 호칭 문제다. 입에 붙지 않는 도련님, 서방님이라는 존칭으로 상대를 지칭하다 보면 잘 잤어? 밥 먹을래? 별일 없니? 등등의 의례적인 말조차 꺼내기가 쉽지 않다. 결혼 전만 해도 누나, 동생처럼 자연스러웠던 시동생과의 관계는 결혼과 동시에 수직적인 구도로 바뀌고 마치 조선시대의 신분제 문화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혼 여성은 이러한 언어 관습 때문에 결혼 전만 해도 친했던 시동생과 어색해지고 거리가 멀어졌다고 토로한다.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호칭의 어원을 따져 보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손위 형수가 손아래 시남동생을 부르는 말인 도련님은 조선 시대에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말이다.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었다. “왜 여자들은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부를 때 왜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호칭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27쪽)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오빠나 남동생의 아내를 부르는 말인 ‘올케’의 어원 역시 역시 오라비의 계집을 뜻한다고 한다.



    ‘도련님’과 ‘형수님’의 경우 모두 끝에 ‘님’이 붙는다고 대등하게 볼 수는 없다. “‘형수님’이라는 호칭에는 형의 아내를 높여 이른다는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없는 반면, ‘도련님’에는 과거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부를 때 사용했던 호칭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쪽에서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쓴다면, 상대편은 ‘마님’이라는 호칭 정도는 써야 형평성에 맞지 않을까? 게다가 아내의 형제자매에 대한 호칭으로 말하자면, 남편은 그저 ‘처형’, ‘처남’, ‘처제’라고 부르면 그만이다.“(28쪽)



    이런 비대칭적인 호칭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부 여성들에 의해 문제제기 되어 왔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이 문제가 급격하게 화두가 되면서 공론화되었고, 정부 차원에서도 약간의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이 책이 유의미한 이유는 오래전부터 가족호칭 개선을 외쳐온 여성들에 뒤이어, 자신이 속한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 이 일을 문제 삼고 이것을 사회적인 차원의 움직임으로 개혁을 시도한 첫 번째 사례라는 것이다.



    다수의 기혼 여성들은 가족 호칭이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쉽사리 시도하지 못한다. 그들 중 일부는 호칭을 “‘책상’이나 ‘의자’ 같은 이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못 부를 것도 없다” 말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각종 경칭으로 상대방과 나의 위계를 엄격하게 따지는 한국어의 구조에서, 그것도 가족 관계의 호칭이 아무런 가치 판단도 들어 있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하기란 힘들다. 사물의 명칭과는 달리,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는 관계에 대한 인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34쪽)



    ■ 호칭은 관계의 출발점

    그렇다면 왜 호칭이 개선되어야 할까? 결혼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름 대신 새아가, 며늘아라고 불린다. 새아가는 “며느리는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어른이 가르치고 품어줘야 한다는 정서”(124쪽)가 담긴 뜻으로 시부모는 자신들이 새아가라고 부르는 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려 한다. 반찬은 뭐 해먹는지, 남편은 잘 챙기는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 시부모에게 전화를 하는지, 집안 식구들의 생일은 언제고, 제사는 언제인지 등. 시가의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이 여자는 어느 순간 시부모의 시선에서는 배워야 할 게 수두룩한 미숙한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언어와 사고는 그 관계가 밀접하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생각이 결정되고 그 생각은 행동에 반영된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에 따르면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살고 있으며, 언어가 노출시키고 분절시킨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한다.” 언어학자 벤자민 워프 역시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정의하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기에, 우리들은 좀처럼 이 바깥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남자들은 상상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과실을 기다리며 가부장의 질서에 복종한다. 여자들에게는 복종의 태도가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권장된다. 침묵하는 것. 순종하는 것. 이 공동체 안에서 가부장의 질서가 잘 돌아가도록 매끄러운 윤활유가 되어주는 것. 권력의 우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욕이든 지배욕이든 통제욕이든 마찬가지다. 권력자의 질서를 지지하는 사회에서 그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우리가 호칭을 그저 단순히 관습적인 문화라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호칭이라는 언어가 그 집단에 속한 각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고 사고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구분된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위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그 인식은 곧 가족의 서열 구조를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이 수직적인 구조 안에서 아랫사람의 말은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도전’으로까지 여겨진다. 심지어 윗사람은 아랫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을 ‘대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말을 붙여주는’ 시혜적인 행위로 인식하곤 한다.”(132쪽)



    가부장 중심의 수직적인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은 가족 구성원 누구도 평등한 선상에서 만날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민주적인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위에 있는 누군가는 권력을 누리며 아래에 있는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유지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두현의 형재현이 어떻게 아랫사람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냐고 격분하는 것 역시,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이라는 것, 어떠한 발언권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내포한다. 독재와도 같은 힘의 우위 아래서 우리는 결코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날 수도 대화할 수도 없다.



    ■ 당신은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려 문제제기한 사람에게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면 문제제기 한 사람은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다들 괜찮은데 나만 유별나게 구는 거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을 수없이 반복한다. 가족 호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족 호칭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을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으로 뭉뚱그려 치부하고, 근본적으로 사회의 질서를 저해하는 불순분자로 간주한다.



    “호칭이 변하면 가족이 해체된다고 주장하는 말의 이면에는 ‘윗사람-아랫사람’이라는 수직적인 질서가 아닌 관계로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공포가 깔려 있다. 여남을 막론하고 자신과 나이가 같은 사람만을 대등한 타인, 즉 ‘친구’라는 관계로 만나온 것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경험이다. 특히 가족이라는 사적인 집단에서 우리는 한 번도 대등한 타자를 만난 적이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수직적인 서열로 인식한다. 이 가족 집단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구성원들은 기존의 서열 구조에 그를 필사적으로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 구조를 벗어나서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과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189쪽)



    저자가 피켓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자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출연 요청을 해왔고, 이곳에서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제기를 언급하자 수많은 이들이 악플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들이 그렇게 손에 꼭 쥐려는 것이 무언인지 되묻는다. “고작 호칭 하나 바꾸자는 것뿐인데 사회가 통째로 흔들릴까 봐 걱정하다니, 그 ‘부계 사회’라는 관념이 얼마나 나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망상인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190쪽)



    가족 호칭 문제는 비단 가족 내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서 풀어야 할 거대한 숙제임에도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미미하다. “국립국어원은 언중에게 책임을 돌리고, 언중은 사전에 책임을 돌리고, 국가는 민간에 책임을 돌리는 동안, 여자들이 감내해왔고 여전히 감내하고 있는 모욕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167~168쪽)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여자들에게 울려 퍼지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가족 호칭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국어학자들은 대화의 장에 참여해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문제를 판단하고 거부할 권한이 있다고 믿는다. 저자의 시가 구성원들 모두 저자가 입을 다물기를 바라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168쪽)



    ■ 원하는 것은 가족의 해체가 아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시부모와 연애 시절부터 오랜 기간 알아왔고 그들에게 특별히 애정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결혼 후 시가 모임이 끝나고 난 뒤 가슴속에 남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곱씹게 되면서 결혼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고 복잡한 호칭 관계가 만들어지고 나니, 남자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위계를 정하는 관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결혼 전 저자가 두현의 부모님을 ‘어머님’과 ‘아버님’이라고 부를 때 장유유서의 관습만을 의식했다면, ‘아주버님-제수씨’와 ‘형님-동서’ 호칭에서 느낀 것은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했다는 감정이다. 시가 모임에서 오직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향도, 남편의 나이를 기준으로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정해지는 부계 중심적인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29쪽)



    대체로 많은 기혼여성이 공감할 만한 이 대목은 시가 안에서 여성의 존재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과도 이어진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여성에게는 그저 해야 할 의무만 주어진다. “한 사람의 입을 닫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안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131쪽) 저자는 그런 불평등한 지형 위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족 호칭을 문제 삼자 사람들은 이혼을 하거나 탈혼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족의 해체를 말하지 않는다. 가정을 유지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 이 책에서 가족 호칭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결국 함께 잘 살기 위한 움직임인 것이다. 우리가 이 여정에 눈 돌리지 않고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가꾸어가길 원한다. 동반자와의 관계를 법과 제도를 통해 보호받고 지원받길 원한다. 동시에 여자의 삶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가부장제가 사라지길 원한다. 나는 사랑을 원하고, 내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보호를 원하며, 여성 인권의 향상을 원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욕망이고, 동시에 내가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삶의 권리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 싶다.”(267쪽)





    “‘지금 죄송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해명은 무슨 해명이냐? 꼭 너희들 뜻이 필요해? 답답하다, 진짜. 그리고 민정이는 원래 낮은 위치인데, 수진이가 존댓말까지 써왔어. 뭐가 문제였다는 거야? 동서니까 형님을 떠받들라고 했어? 자유롭게 뒀잖아. 우리가 일을 시켰어? 어휴… 그깟 호칭 때문에. 1년이나? 어휴.’ 이어지는 빈정거림 속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두 마디였다. “일상에서 그렇게 따져 들어가는 게 무슨 소용이야? 자격지심 아니야?



    이 말이 아팠던 이유는, 아마도 살아오는 동안 이런 말이 수없이 내 안에서 되풀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살아가면서 어느 한순간은 자신에게 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한 번 눈감고 지나가면 아무 문제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았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작은 목소리를 지워버리지 않았을까.”(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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