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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염증에 걸린 마음

염증에 걸린 마음
  • 저자에드워드 불모어
  • 출판사심심
  • 출판년2020-06-03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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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약이 듣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의 우울증은 염증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에드워드 불모어가 밝힌

    염증과 우울증에 관한 새로운 과학

    30년 전 영국 런던의 한 진료실, 류머티즘성관절염에 걸린 50대 후반의 P부인이 의사를 찾았다. P부인은 여러 해 동안 관절염을 앓고 있었는데 손의 관절들이 부어올라 통증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손 모양도 뒤틀려 있었다. 무릎에서는 콜라겐과 뼈가 파괴되어 관절이 더 이상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아서 걷기도 무척 힘들었다. 의사는 표준적인 검사표에 없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P부인의 마음 상태와 기분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P부인은 자신의 에너지 수준이 매우 낮고, 이제 어떤 일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수면 패턴도 엉망이고, 늘 비관적인 생각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P부인은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의사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P부인의 증상을 더욱 자세히 파고들어 작은 의학적 발견을 했다고 생각했다. 부인은 류머티즘성관절염 때문에 진료실에 왔지만 거기에 우울장애라는 진단까지 추가했으니 말이다. 의사는 선배에게 이 중요한 소식을 알리려고 서둘러 달려갔다. “P부인은 관절염만 있는 게 아니라 우울증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우울증? 글쎄, 자네가 그 부인이라면 우울증에 안 걸리겠나?”(28~29쪽)

    당시 의학계와 과학계의 통념에 따라 P부인의 우울증은 제대로 진단되지 못했고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에 따르면 우울증에 해당하는 모든 증상이 있더라도 다른 신체 질병이 있는 경우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비단 30년 전의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근거해 몸과 마음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서구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에게 의학은 몸의 병만 다루고, 마음의 문제는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근거로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프더라도 각기 다른 병원을 찾아가, 다른 교육을 받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왔다.

    이런 인식에 근거해 우리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문제를 그저 ‘마음’의 문제로 다뤄왔다. 그러다 30년 전 ‘뇌 속에 세로토닌 호르몬이 모자라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뇌에 기반한 정신의학의 핵심 가설이 등장하면서 우울증 치료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개발되었다. 프로작이라는 대표 상품으로 잘 알려진 항우울제는 그렇게 30년간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많은 사람에게 효과를 거두었다. 우울증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개발된 획기적인 치료제는 우울증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0년 전 개발된 항우울제는 모든 환자에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금도 우울증 환자의 3분의 1은 항우울제 효과를 보지 못한채 우울증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왜 이들에게는 항우울제가 듣지 않을까? 왜 그동안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은 하나도 추가되지 않았을까? 그간의 우울증 연구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일까?

    세계적인 신경면역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불모어(Edward Bullmore)는 우울증의 원인이 ‘염증’에 있다고 지목한다. 몸의 염증이 뇌에까지 영향을 미쳐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처음 도입한 fMRI 연구에 참여하며 인간의 뇌 지도, 커넥톰connectome을 그리는 데 공헌해온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 전문가인 그는 누구보다 과학적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자다. 신경과학과 정신의학 연구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신경면역학과 면역정신의학이라는 최신 과학을 기초로 염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불모어 교수는 면역학, 신경과학, 정신의학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 새로운 과학으로 얻은 연구 결과가 정신 건강 분야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했고 그 내용을 《염증에 걸린 마음(원제: The Inflamed Mind, 심심 刊)》에 담았다. 이 책은 면역계와 신경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신체 염증이 우울증 같은 정신적 증상을 초래하는지, 새로운 치료법은 등장할 것인지에 답하는 최초의 대중 교양서다. WHO가 앞으로 20년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은 환자가 생길 것으로 예측한 단일 질환인 우울증은 세계 인구의 7퍼센트인 3억 5000만 명 이상이 앓고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우울증 환자를 비롯해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더 나아가 ‘우울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움츠러들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 책은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치료법에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



    몸의 염증은 기분과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면역학을 기초로 신경과학, 심리학, 정신의학의 오랜 관념을 뒤흔드는 도발적인 책

    어떻게 면역계가, 그리고 염증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것일까? 우리 몸은 외부에서 균이 침투하면 대식세포가 달려들어 균을 잡아먹고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 단백질을 생성한다. 사이토카인은 혈액을 타고 이동하며 온몸에 위험 상황을 알려 염증반응을 유발한다.(37쪽) 이는 몸이 스스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얼마 전까지 뇌는 몸에 생긴 염증 물질들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뇌 조직과 혈액 사이에 있는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이 혈액 속의 유해한 물질들이 뇌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벽방어를 해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이토카인을 비롯한 염증 물질들이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물질이 뇌에 들어가면, 뇌의 대식세포에 해당하는 미세신경교세포가 사이토카인을 생성하면서 몸의 염증 상태를 뇌에서 재현하고 확대한다.(187쪽)

    몸의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세신경교세포가 활성화되면 주변에 있는 뉴런과 다른 신경세포 들이 부수적인 피해를 입는다. 염증 때문에 잔뜩 화가 난 미세신경교세는 염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근처에 있는 뉴런을 죽이거나 죽은 뉴런을 대체할 새 뉴런이 형성되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또 뉴런의 적응성, 즉 가소성을 떨어뜨린다. 뉴런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은 원래 가소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유용하거나 자주 사용되는 연결은 더욱 강해지고, 쓸모가 적거나 자주 사용되지 않는 연결은 약해지는 것이다. 시냅스 가소성은 적응행동과 학습,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세신경교세포 활성화로 인한 시냅스 및 시냅스 가소성 감소는 염증이 생긴 동물이 기억 소실, 인지장애, 유사 우울증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미세신경교세포 활성화는 뉴런이 신경전달물질을 처리하는 방식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향은 수면, 식욕,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의 경우에 더욱 명백히 나타난다. 보통 뉴런은 트립토판tryptophan이라는 물질을 원료로 세로토닌을 만든다. 그러나 화가 난 미세신경교세포가 분비하는 사이토카인은 뉴런에게 트립토판으로 세로토닌이 아닌 다른 최종산물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염증이 뇌에서 우울증의 원인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의 생성과 작용을 방해한다는 것은, 염증이 곧 우울증의 원인임을 반증하는 것과 같다.(204~206쪽)

    불모어 교수는 혈액 속 사이토카인이 뇌 속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이 다시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촘촘히 설명하며 이것이 단순히 가설이 아닌 진실임을 보여준다. 이 책을 먼저 읽은 국내 최고의 정신의학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 권준수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염증과 우울증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은 이제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 분명한 사실”이라고 부연한다. 더불어 책에는 이를 뒷받침할 유의미한 연구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1. 만성 우울증에 걸린 모습을 보이는 쥐들

    “생쥐에게 염증성 세균을 주입하면 그 쥐는 다른 쥐들과 사회적 접촉을 피하며 움츠러들고, 잘 움직이지 않으며, 잠을 자고 먹이를 먹는 패턴도 엉망이 된다. 한마디로 염증은 동물들에게 질병 행태sickness behavior라 불리는 증후군을 유발하는데, 이는 인간의 우울증 증상과 유사하다. 사실 생쥐에게 염증을 일으켜야만 이런 질병 행태를 보이는 건 아니다. 사이토카인만 주입해도 충분한데, 이는 질병 행태를 유발하는 것이 균 자체가 아니라 염증에 대한 면역반응이라는 것을 증명한다.”(40쪽)

    “대식세포를 몹시 화나게 만드는 분자인 지질다당 주사를 놓아 한 차례 급성염증 충격을 가하면, 집쥐의 행동은 거의 순식간에 변해서 24~48시간 동안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태를 보이고, 그 후 며칠에 걸쳐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지질다당 주사를 다시 한 번 더 놓으면, 또다시 며칠간 질병 행태가 이어진다. 이와 유사하게 생쥐에게 결핵 백신을 주사하면 처음 며칠 동안 단기적인 질병 행태 단계를 거치지만, 그 이후로도 여러 주 동안 다른 생쥐들을 멀리하며 사회적 고립 상태를 유지하고,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을 별로 추구하지 않는다. 그 생쥐는 마치 염증의 결과로 만성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201~202쪽)



    2. 백신접종 같은 경미한 염증에도 우울을 경험하는 뇌

    “더불어 최근 MRI 연구들은 몸의 염증이 인간 뇌의 활동과 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내놓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젊은이들에게 장티푸스 백신을 주사하면 그들의 면역계는 세균을 주입한 쥐의 면역계와 비슷하게 반응하고, 혈중 사이토카인 수치도 치솟는다. 또한 백신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약간 우울한 상태가 되는데, 백신접종 이후의 이러한 우울감은 감정 표현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뇌 영역들이 대단히 활성화된 것과 관련이 있었다.”(41쪽)



    3. 우울증이 염증 생체지표 증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조군 연구

    “지금까지 진행된 규모가 가장 큰 연구는 코펜하겐 시민 7만 3131명의 C-반응성 단백질과 우울 증상을 측정한 것이다. 덴마크의 평범한 시민 가운데, 자신이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나 노력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가벼운 정도의 우울 증상들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혈중 C-반응성 단백질 농도가 현저히 높았다. 그 데이터에서는 용량반응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도 관찰되었다. 바꿔 말하면, C-반응성 단백질 농도로 추측한 염증의 양이 많을수록, 부정적 편향과 자기비판적 생각으로 측정한 우울 반응도 더 컸다는 말이다. 그 정도의 용량반응관계가 우연히 발생할 확률은 1조 분의 1 미만으로 추산되었다.”(175쪽)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생체지표가 없다

    세로토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하는 환자와 의사들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법을 지배하던 ‘세로토닌 원인설’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것일까? 프로작을 개발한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과학자들은 당시 세간의 이목을 끌던 신경전달물질 이론에 근거해 세로토닌이 우울증 유발과 관련된 요소 중 하나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표적으로 약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우울증 환자가 세로토닌 때문에 문제를 겪는다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

    물론 프로작으로 대표되는 항우울제는 많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작 이후로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중요한 새 방법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불모어 교수는 그 배경에는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목된 ‘세로토닌 양’을 정확히 측정할 생체지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로토닌이 잠이나 음식 섭취를 조절하는 것과 같은 신경계의 기본 기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 하지만 우울증에 걸렸을 때 손상되는 뇌 기능에서 일반적으로 세로토닌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아는 것과 세로토닌 결핍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주장을 탄탄히 입증하려면 우울증 환자의 뇌에 세로토닌 양이 적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울증의 세로토닌 원인설을 입증할 이 결정적인 증거는 수십 년 동안 찾아왔음에도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159쪽)



    대부분의 의학 분야에서 의사들은 혈액검사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체지표를 사용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예를 들어 혈액 검사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헤모글로빈 수치는 가장 기본적인 생체지표다. 이 생체지표는 혈액 속 적혈구가 너무 적은 상태인 빈혈을 진단하는 데 사용되거나 빈혈 환자가 수혈 치료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정신의학 진료에서는 어떤 혈액검사도, 어떤 생체지표도 사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세로토닌 시스템의 해부학적 특성 때문이다.



    “세로토닌 생체지표 측정은 세로토닌 시스템의 해부학적 특성 때문에 근본적으로 어렵다. 인간의 뇌에는 세로토닌을 생산하는 뉴런이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뇌간에 집중되어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이 뉴런들의 세로토닌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뇌스캔, 즉 뇌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뇌에서 그렇게 작고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어떤 종류건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162쪽)



    불모어 교수는 우울증을 치료할 때 참조할 생체지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느냐고 묻는 환자들이 명쾌한 답을 듣기 어렵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한 가지 약을 시도해보고 그 약이 듣지 않으면 다른 약을 시도해보는 시행착오 방식을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모든 우울증을 다 똑같은 병으로 취급하고 치료하게 될 것이라고 불모어 교수는 우려한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우울증 환자와 세로토닌 수치가 낮은 우울증 환자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어서 그들 모두가 세로토닌 수치가 낮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들 모두가 같은 상태일 거라고 무작정 가정하는 것은 환자가 아닌 누구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처럼 세로토닌 원인설의 한계를 지적한 불모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나는 인류의 많은 수가 뇌 속의 측정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분자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요동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는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증의 세로토닌 원인설은 프로이트의 수량화할 수 없는 리비도 이론이나 히포크라테스의 존재하지도 않는 흑담즙 이론만큼이나 허술하다.”(165쪽)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새로운 프레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유발하는 가장 큰 난제에 맞서는 방법

    염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새로운 발견은 정신질환의 원인을 단순히 ‘마음’이나 ‘뇌’가 아닌 신체 건강과 연결해볼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불모어 교수는 알츠하이머병과 조현병의 경우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면역학의 관점에서도 질병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억을 비롯한 인지기능을 점진적으로 잃어버리는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에 생긴 염증이 미세신경교세포를 활성화해 뉴런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예방하는 데 새로운 항염증 치료가 효과를 거두리라 기대할 수 있다.(292쪽) 조현병의 경우 임산부와 태아, 신생아의 감염이 모두 조현병 위험의 증가와 연관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겨울에 태어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겨울에는 인플루엔자를 비롯한 여러 감염 요인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299~300쪽) 이러한 관점은 조현병을 또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며 새로운 조현병 치료법을 기대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펴보고 그 원인을 명쾌하게 밝혀냈는데 왜 염증을 치료해 우울증을 낫게 하는 약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1980년대 말 등장한 프로작이 우울증약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로는 더 나은 약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의 과학 연구로 대부분의 다른 의학 분야는 이전 이론들에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 암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1989년 당시 알려져 있던 암 지식만을 이용해 진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학계만 변함이 없다. 30년 전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던 해법, 그러니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심리치료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가진 치료법의 거의 전부다.

    세로토닌에만 초점을 맞춘 우울증 연구가 계속되는 한 우울증 치료의 혁신을 일으킬 약물 개발은 현재로서는 요원하다. 그러나 불모어교수는 한 가지 희망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이미 개발되었거나 다른 질병들에 대해 사용 승인이 난 항염증약들 중에서 염증으로 인한 우울증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인간 면역계에서 표적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밝혀진 약물이 우울증 환자에게도 효과를 낼지 여부를, 비용과 시간을 더 적게 들이고 덜 위험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용도 변경은 제약업계가 다시 항우울제 연구를 시작하는 데 힘이 될 수 있고, 연구에 들어가는 시간도 짧아져 약 5~10년 안에 혁신적인 치료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277~287쪽)

    더불어 저자는 스트레스와 염증과 우울증을 잇는 악순환을 깰 다른 방법도 제안한다. 비만이나 흡연, 음주, 스트레스 등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 원인을 제거하고 항염증 효과가 있는 식단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명상과 운동, 요가 등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수련들도 몸속 염증 물질을 줄이는 데 효과가 높은 것으로 증명되었다.(285쪽)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우울증을 전혀 경험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우울증이 여러 면에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삶의 질이 떨어지고 기대 수명 역시 짧아진다는 알게 되었다. 선진국들에게 국내총생산의 3퍼센트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 병은 암이나 심장병, 류머티즘성관절염이나 결핵 같은 신체질환이 아니라 바로 우울증이다. 저자는 우울증 및 관련 장애들이 유발하는 경제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울증이 단순히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유발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우울증을 완전히 치료하고자 한다면 국내총생산에 대략 4퍼센트를 더하거나, 전체 경제의 연간 성장률 목표치를 2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3배 올리는 것에 맞먹을 정도의 비용이 들 거라고 불모어 교수는 설명한다. 영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든 우울증이 전혀 없는 나라가 된다면 국부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 보다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하는 이유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불모어 교수는 책 전체를 관통하며 무엇보다 우울증을 순전히 마음만의 문제라 여기며, 병의 고통을 더욱 악화하는 폭력적인 낙인이 과거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아직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염증이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상식임을 강조하는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제시할 것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우울증을 더욱 제대로 이해하면 그 낙인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하여 21세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큰 난제에 맞선 싸움에서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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